고슴도치의 거리 — 쇼펜하우어에게 배우는 관계의 기술 #03


고슴도치의 거리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들의 고민

쇼펜하우어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몸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팠습니다. 아파서 떨어지면 다시 추워졌고, 추워서 다가가면 또 찔렸습니다. 그렇게 다가섰다 물러서기를 반복하던 고슴도치들은 마침내 서로 찔리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를 찾아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은 외로움 때문에 서로에게 끌리지만, 각자가 지닌 성격과 단점 때문에 가까워질수록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오래 함께하는 관계일수록 예의와 절제라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고슴도치의 딜레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 우화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아이들 곁에 있는 일은 마음을 다해 다가가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아이의 상처가 내 상처가 되고, 퇴근 후에도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 발 물러서면, 아이는 금세 그 거리를 알아챕니다.

처음에는 아이 돌봄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 업무적으로 도와 주었지만, 이해충돌 앞에서는 거리를 두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25년 가까이 현장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은, 좋은 돌봄은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곁에 있을 수 있느냐'라는 점입니다. 내가 먼저 무너지면, 결국 아이 곁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찾는 세 가지 질문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들처럼, 우리도 관계 속에서 거리를 조절해야 합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1. 이 관심은 상대를 위한 것인가,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인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일 때가 있습니다. 상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도 돌봄입니다.

2. 나는 지금 온기를 나누고 있는가, 가시에 찔리고 있는가?
관계가 나를 계속 아프게 한다면, 거리를 조금 넓혀야 한다는 신호입니다. 물러서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다시 다가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3. 나를 돌볼 시간은 남아 있는가?
고슴도치에게도 혼자 몸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합니다. 쇼펜하우어가 고독을 소중히 여긴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혼자서도 괜찮은 사람이 함께할 때도 건강합니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차갑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거리'라는 말을 들으면 냉정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고슴도치들이 찾은 것은 차가운 거리가 아니라 따뜻하면서도 다치지 않는 거리였습니다.

아이와의 관계도, 동료와의 관계도, 가족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가시를 인정하고, 그 가시가 닿지 않을 만큼만 물러서는 것. 그것이 오래도록 서로를 지킬 수 있는 지혜일 것입니다.

오늘의 질문

지금 나에게 너무 가까워서 아픈 관계는 무엇이고, 너무 멀어서 추운 관계는 무엇인가요?

오늘 하루, 그 거리를 한 뼘만 조절해 보면 어떨까요.


참고 도서: 『쇼펜하우어 인생수업』 (고슴도치 우화는 쇼펜하우어의 저서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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