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자기기준인 게시물 표시

위버멘쉬 사고방식 실전 적용법 — 철학책 밖에서 니체를 사는 다섯 가지 방법 | 위버멘쉬 명언 #80

이미지
  들어가며 — 위버멘쉬는 철학책 속에만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위버멘쉬(Übermensch)를 철학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체의 철학은 어렵고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는 단순한 철학적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 안정적인 직장, 높은 연봉, 넓은 집,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이 성공의 기준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니체는 이러한 기준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준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위버멘쉬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명언 "위버멘쉬는 대지의 뜻이다. … 형제들이여, 간절히 바라노니 대지에 충실하라!" Der Übermensch ist der Sinn der Erde. … Ich beschwöre euch, meine Brüder, bleibt der Erde treu!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 3절 (필자 번역) 니체는 위버멘쉬를 하늘 저편의 이상이 아니라 '대지', 곧 우리가 발 딛고 사는 현실의 삶 속에 두었습니다. 위버멘쉬는 저 멀리 있는 초인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가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위버멘쉬란 무엇인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위버멘쉬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시리즈 #01 참고). 많은 사람들이 위버멘쉬를 초인이나 영웅처럼 이해하지만, 니체가 말한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위버멘쉬는 기존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이나 타인의 평가에 자신의 삶을 맡기지 않습니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자신의 책임 아래 살아가는 인간을 뜻합니다....

자기 기준을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 — 25년을 버티게 한 단순한 원칙 두 가지 | 위버멘쉬 명언 #58

이미지
  들어가며 —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오래 일하실 수 있었나요?" 25년 가까이 현장에서 일하며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오래 일하실 수 있었나요?" 돌아보면 거창한 신념이나 완벽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주 작고 단순한 원칙 몇 가지를 오랫동안 반복해서 지켜 왔을 뿐입니다. 자기 기준은 크게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행동을 꾸준히 반복하는 데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현장에서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경험을 통해 자기 기준을 만드는 현실적인 방법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자신의 성격에 '양식'을 부여하는 것, 위대하고 드문 기술이다!" Seinem Charakter „Stil geben" — eine grosse und seltene Kunst!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290절 (필자 번역) 니체는 이 기술이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연습과 매일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루아침에 완성된 기준은 없습니다. 작은 원칙 하나를 매일 다듬어 가는 일이 결국 나라는 사람의 모양을 만듭니다. 사례 1.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결정하지 않는다 경력 초반,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성급하게 내린 판단이 이후 여러 문제를 만든 경험이 있었습니다. 보호자와의 갈등이 심했던 날, 화가 난 감정 그대로 대응 방식을 결정했다가 다음 날 다시 조율해야 했던 일입니다. 그 일 이후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스스로 정했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화가 나거나 감정이 흔들릴 때는 그 자리에서 답하지 않고, 잠시 시간을 둔 뒤 다시 판단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이 단순한 기준 하나를 반복해서 지키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적인 상황에서도 훨씬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지켜야 했던 원칙이, 시간이 ...

자기 삶을 잃어버리는 과정 —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물음 앞에서 | 위버멘쉬 명언 #52

이미지
  들어가며 —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분명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해야 할 일을 했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도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은 공허합니다. 목표를 이루어도 만족감이 오래가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삶이 아니라 남의 기준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자신이 이 세상에 단 한 번, 유일무이한 존재로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Im Grunde weiss jeder Mensch recht wohl, dass er nur einmal, als ein Unicum, auf der Welt ist. —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3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절 (필자 번역) 니체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다시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우리는 남의 삶을 기준 삼아 자신을 재고, 남이 정한 길을 그대로 따라갑니다. 단 한 번뿐인 삶을 남의 각본으로 살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왜 자기 삶을 잃어버릴까 어릴 때부터 우리는 비교 속에서 자랍니다. 공부를 잘해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하며,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물론 이런 목표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목표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기회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 넓은 집,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이런 것들을 얻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타인이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남들의 기대를 채우는 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결국 삶의 방향을 ...

기준 없는 사람이 쉽게 무너지는 이유 — 흔들려도 돌아올 자리 만들기 | 위버멘쉬 명언 #51

이미지
  들어가며 — 유난히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 살다 보면 유난히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받고, 남들의 평가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며,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불안해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나올까요? 환경도 분명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같은 환경에서도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자기 기준'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자, 단 한 번뿐인 자, 비교할 수 없는 자, 스스로에게 법을 주는 자, 스스로를 창조하는 자가!" Wir aber wollen Die werden, die wir sind, — die Neuen, die Einmaligen, die Unvergleichbaren, die Sich-selber-Gesetzgebenden, die Sich-selber-Schaffenden!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335절 (필자 번역) 니체가 그린 사람은 '비교할 수 없는 자', '스스로에게 법을 주는 자'입니다. 남과 견주어 나를 정하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 그것이 이 글이 말하는 '자기 기준'의 출발점입니다.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들의 특징 자기 기준이 없는 사람들은 대부분 선택의 기준을 바깥에 둡니다. 누군가 좋다고 하면 따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한 길을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선택한다 인정받기 위해 무리한 행동을 한다 자신의 감정보다 타인의 기대를 앞세운다 비교 속에서 끊임없이 불안해한다 처음에는 문제가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워집니다. 왜 기준 없는 삶은 불안할까 기준이 없는 사람은 매 순간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을 할 때마다 고민이 길어지고, 누구의...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법 — 초임 시절의 흔들림에서 배운 것 | 위버멘쉬 명언 #49

이미지
  들어가며 — 말 한마디에 하루가 좌우되던 시절 25년 가까이 이 일을 해 오면서, 초반 몇 년은 사실 저 역시 다른 사람의 반응에 크게 흔들리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보호자의 말 한마디, 상급자의 평가 한마디에 하루 전체 기분이 좌우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흔들림이 조금씩 줄어든 것은, 특별한 요령을 배워서가 아니었습니다. 현장에서 여러 사람을 지켜보며 '자기 기준'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너는 너 자신에게 너의 악과 선을 부여하고, 너의 의지를 법처럼 네 위에 걸 수 있는가?" Kannst du dir selber dein Böses und dein Gutes geben und deinen Willen über dich aufhängen wie ein Gesetz?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부 「창조하는 자의 길에 대하여」 (필자 번역) 니체는 자기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에게 먼저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남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 정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을 스스로 세운 사람에게, 타인의 말은 더 이상 하루를 결정하는 법이 아니라 참고 자료가 됩니다. (같은 장의 다른 구절은 시리즈 #47·#50에서 다뤘습니다.) 자기 기준이 없으면 타인의 말이 곧 기준이 된다 자기만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을수록 바깥의 평가가 그 빈자리를 채웁니다. "나는 어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이 없던 시절에는, 상급자의 말 한마디, 보호자의 반응 하나가 곧 저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현장에서 오랫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도 비슷합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원칙과 방향이 분명한 종사자일수록 바깥의 평가에 덜 흔들리고, 뚜렷한 기준이 없을수록 작은 반응 하나에도 크게 동요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타인의 감정은 상대의 몫이다 상대의 반응이나 감정을 지나치게 자신의 책임으로 여길 때 흔들림은 커집니다. ...

약한 인간 vs 강한 인간 — 같은 세상, 다른 결과를 만드는 '기준' | 위버멘쉬 명언 #22

이미지
들어가며 — 같은 세상, 다른 결과 사람은 모두 같은 세상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누군가는 작은 문제에도 쉽게 무너지고, 누군가는 큰 위기 속에서도 끝까지 버팁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 차이를 환경이나 재능, 경제적 여건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기준'입니다. 오늘의 명언 "모든 고귀한 도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의기양양한 긍정에서 자라나지만,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바깥의 것, 다른 것, 자기 아닌 것에 '아니오'라고 말한다." Während alle vornehme Moral aus einem triumphirenden Ja-sagen zu sich selber herauswächst, sagt die Sklaven-Moral von vornherein Nein zu einem „Ausserhalb", zu einem „Anders", zu einem „Nicht-selbst". —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 1논문 10절 (필자 번역) 니체가 말한 약함과 강함의 차이는 힘의 크기가 아니라 출발점에 있습니다. 약한 태도는 늘 바깥에 대한 반응으로 시작하고, 강한 태도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에서 시작합니다. 내 기준이 나에게서 나오는가, 남에게서 나오는가의 차이입니다. 약한 인간의 특징 약한 인간은 상황에 따라 흔들립니다. 기분이 좋으면 행동하고, 기분이 나쁘면 포기합니다. 기준이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입니다. 운동을 시작해도 조금 힘들면 멈추고, 공부를 시작해도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으면 포기합니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자존감도 흔들립니다. 칭찬하면 행복하고, 무시하면 무너집니다. 삶의 중심이 자기 안에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책임 회피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환경 탓을 합니다. 부모 때문에, 회사 때문에, 상사 때문에, 시대 때문에. 물론 환경은 중요합니...

위버멘쉬란 무엇인가 — 남이 만든 기준이 아니라, 내가 만든 기준으로 | 위버멘쉬 명언 #21

이미지
들어가며 — 흔들리던 기준을 다시 세우며 직장 안에서 여러 일들을 겪으며 어느새 희미해졌던 나만의 기준을 다시 하나씩 세워 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던 주변의 시선이 부쩍 날카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요. 사람마다 앞과 뒤가 다르고, 필요에 따라 태도가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가지를 다짐했습니다. 더는 그런 반응에 민감해지지 않기로. 나의 기준과 원칙을 세우면 되는 것이니까요. 오늘의 명언 "나는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이다. 너희는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Ich lehre euch den Übermenschen.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Was habt ihr gethan, ihn zu überwinden?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 3절 (필자 번역) 위버멘쉬라는 말이 세상에 처음 나온 대목입니다. 니체는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묻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했는가?" 위버멘쉬는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스스로 답해야 하는 질문이라는 뜻입니다. 위버멘쉬, 정확히 무엇인가 '위버멘쉬(Übermensch)'에서 '위버(über)'는 '넘어서', '멘쉬(Mensch)'는 '인간'을 뜻합니다. 우리말로는 흔히 '초인'으로 옮기지만, 원래 뜻은 '자신을 넘어서는 인간'에 가깝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1885)에서 이 개념을 처음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마지막 인간'을 세웠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으며, 작은 안락에 만족하는 인간입니다(시리즈 #24 참고). 흔한 오해 두 가지 "남보다 우월한 인...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방법 —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갇혀 있던 시간들 | 위버멘쉬 명언 #13

이미지
들어가며 —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갇혀 있던 시간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에 쓰게 됩니다. 업무를 하면서도 나에게 효율적인 방식보다 동료를 돕는 방법을 먼저 찾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의 기준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창피하지 않을까?" "괜히 나섰다가 욕먹는 거 아닐까?" 이 생각이 반복될수록 삶의 중심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집니다. 결국 나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대중에 속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안이하기를 그만두기만 하면 된다.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외치는 자신의 양심을 따르라." Der Mensch, der nicht zur Masse gehören will, braucht nur aufhören, gegen sich bequem zu sein; er folge seinem Gewissen, welches ihm zuruft: „sei du selbst!" —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3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절 (필자 번역) 니체는 남의 눈을 따라 사는 편안함을 '자기 자신에게 안이한 태도'라고 불렀습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길은 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조금 더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를 떠올려 봅시다. 처음에는 잠깐 기억에 남지만, 하루만 지나도 대부분 잊어버립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삶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말실수, 옷차림, 행동, 선택을 오래 기억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

착한 사람이 결국 손해 보는 이유 — 니체가 말한 '착함'의 함정 | 위버멘쉬 명언 #03

이미지
"착하게 살면 잘된다"는 믿음의 함정 우리는 "착하게 살면 결국 잘된다"는 믿음을 안고 살아갑니다. 어릴 때부터 배려하고 양보하며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니체는 이 믿음의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선악의 저편』에서 그는 무리가 편하게 지내기 위해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순응과 양보를 '무리 도덕'이라 불렀습니다. 남에게 맞추는 삶은 겉으로는 착해 보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자기 삶을 포기하는 선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관점은 오늘날의 인간관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실제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들여다보면, 항상 양보하고 배려하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고 필요할 때 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더 신뢰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단순히 강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기준'을 가진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명언 "어머니가 아이 안에 있듯, 너희의 자기 자신이 너희의 행위 안에 있기를. 이것이 덕에 대한 나의 말이다." Dass euer Selbst in der Handlung sei, wie die Mutter im Kinde ist: das sei mir euer Wort von Tugend!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부 「덕 있는 자들에 대하여」 (필자 번역) 니체에게 진짜 덕은 남이 시켜서 하는 선행이 아니라, 내 자신이 고스란히 담긴 행동입니다. 착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필요한 것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강한 사람' 그렇다면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요. "착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강함은 공격성이나 이기심이 아닙니다.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