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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뒷면을 볼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 — 쇼펜하우어의 나이 듦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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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뒷면을 볼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 젊을 때는 앞을, 나이 들면 뒤를 본다 젊을 때 인생은 끝없이 펼쳐진 길처럼 보입니다. 앞으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고, 시간은 넉넉해 보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빨리 흐르고, 앞보다 지나온 길을 더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변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았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삶을 미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나이가 들면 과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본문과 주석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한 권의 책에 비유했습니다. 인생의 전반부는 본문이고, 후반부는 그 본문에 대한 주석 이라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본문을 쓰느라 바쁩니다. 그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러다 인생의 후반부에 이르러서야 지나온 문장들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사이의 연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또 다른 비유도 들었습니다. 인생은 자수와 같아서, 전반부에는 앞면의 무늬만 보이지만 후반부에는 뒷면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면만큼 아름답지는 않지만, 뒷면을 보면 실이 어떻게 엮여 그 무늬가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25년, 현장의 뒷면을 보다 사회복지 현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를 떠올려 봅니다. 과거의 사회복지 현장이 없었다면 지금의 사회복지 현장은 나에게 없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의 사회복지 현장의 사회복지사에게서 배운 지혜가 많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에게, 아이에게, 그리고 동료간, 조직간 지켜야 할 상식과 열정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시설에서 오래 일 할려면 시설병에 걸리지 않도록 자기계발에 노력해야 한다'라는 오랜 사회복지사 친구의 말이 기억납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본문을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고민할 여유도 없이 아이들과 부딪히고, 실수하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2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뒤를 돌아보니, 그 서툴고 아팠던 순간들이 실처럼 엮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뒷면을...

건강한 하루가 행복의 9할이다 — 쇼펜하우어의 산책 습관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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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하루가 행복의 9할이다.  병든 왕보다 건강한 사람이 행복하다 쇼펜하우어는 행복을 이야기할 때 건강을 가장 앞에 두었습니다. 그는 우리 행복의 대부분이 건강에 달려 있다고 보았고, 건강한 가난한 사람이 병든 왕보다 더 행복하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건강할 때는 모든 것이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건강을 잃으면 아무리 좋은 것도 제대로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돈이나 명예, 출세를 위해 건강을 희생하는 것을 가장 어리석은 일 이라고 했습니다. 철학자의 규칙적인 하루 쇼펜하우어 자신도 이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아침에는 머리가 맑을 때 글을 쓰고, 오후에는 날씨와 상관없이 오랫동안 산책을 했으며, 저녁에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화려한 비결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같은 리듬으로 몸과 마음을 돌보는 것 ,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남을 돌보는 사람의 몸은 누가 돌볼까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남의 건강은 꼼꼼히 챙기면서 정작 자신의 몸은 뒤로 미루기 쉽습니다. 아이들의 병원 일정은 기억하면서 내 건강검진은 미루고, 아이들 밥은 챙기면서 내 끼니는 대충 때웁니다. 동료와 업무적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면서 깨닫는 것은 올바른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25년 가까이 현장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은, 오래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 몸을 돌보는 습관 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돌봄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습관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잘 먹고, 충분히 자고, 몸을 움직이는 것. 이 평범한 습관은 아이들이 시설을 떠나 혼자 살아갈 때 가장 든든한 힘이 됩니다. 어른이 먼저 그런 삶을 보여 줄 때, 아이들은 말보다 더 깊이 배웁니다. 나를 지키는 세 가지 습관 1. 하루 한 번, 몸을 움직이기 쇼펜하우어처럼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퇴근길에 한 정거장 먼저 내려 걷는 것으로도 충분합니다. 2. 몸...

원하는 걸 얻었는데 왜 허전할까 — 쇼펜하우어의 시계추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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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걸 얻었는데 왜 허전할까  갖고 싶던 것을 손에 넣은 다음 날 오래 갖고 싶던 물건을 샀을 때를 떠올려 보세요. 처음 며칠은 설레고 기쁩니다. 그런데 일주일, 한 달이 지나면 그 물건은 그냥 '원래 있던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또 다른 것을 원하고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었는데, 왜 마음은 금세 다시 허전해질까요. 삶은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쇼펜하우어는 이 질문에 날카로운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시계추처럼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고 보았습니다. 한쪽 끝은 결핍의 고통 입니다. 무언가를 원하지만 갖지 못해 괴로운 상태입니다. 다른 쪽 끝은 권태 입니다. 원하던 것을 얻고 나면 찾아오는 지루함과 공허함입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괴롭고, 채워지면 지루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다시 새로운 욕망을 만들어 내고, 시계추는 계속 흔들립니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이 인간이 끝없이 무언가를 쫓는 이유라고 했습니다. 물질로 채워지지 않는 마음 아동양육시설에서 일하다 보면 이 시계추를 자주 보게 됩니다.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많은 후원 물품이 들어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아이들도 새 물건을 받으면 환하게 웃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습니다. 며칠이 지나면 아이들은 다시 무언가를 원하고, 때로는 더 허전해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욕구에 맞는 선물을 준비했는데 받은 날 오히려 짜증을 내던 아이를 보니 본인이 임의로 필요한 물품을 선택하여 즐거워해야 할 날을 슬프게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아이는 값비싼 선물이 아닌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선물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지켜보며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의 허전함이 물건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진짜 원했던 것은 변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는 사람, 나를 기억해 주는 관심 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많은 물건으로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시계추를 잠시 멈추는 순간 그렇...

배에는 바닥짐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통의 의미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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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는 바닥짐이 필요하다.  삶은 왜 이렇게 아플까 쇼펜하우어는 삶의 본질을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원하는 동안에는 결핍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염세주의 철학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조금 더 깊이 읽으면,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보입니다. 그는 고통을 그저 피해야 할 것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바닥짐의 비유 배에는 바닥짐(밸러스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 밑바닥에 일부러 싣는 무거운 짐입니다. 짐이 무거우니 없는 편이 나을 것 같지만, 바닥짐이 없으면 배는 바람과 파도에 쉽게 기울고 뒤집힙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에게도 이런 바닥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걱정과 수고, 어려움이 있어야 사람이 중심을 잡고 똑바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 걱정 없이 모든 것이 채워진 삶은 권태에 빠지거나 쉽게 흔들린다고 보았습니다. 고통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통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이 모든 고통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는 점입니다. 아동양육시설의 아이들 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고 온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상처를 "다 너를 강하게 만들려고 그런 거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겪은 고통은 겪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바닥짐은 삶을 무너뜨리는 무게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적당한 무게 입니다. 그래서 돌봄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아이를 무너뜨릴 만큼의 무게는 함께 덜어 주고, 아이가 스스로 감당하며 자랄 수 있는 무게는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입니다. 상처 위에서 자라는 아이들 어느 날 아이가 자립하면 양자가 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학창시절을 무탈하게 넘기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예스가 아닌 서로가 힘든 시간을 뛰어넘자는 의미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대합니...

남의 머릿속에 사는 나를 내려놓기 —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평판의 함정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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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머릿속에 사는 나를 내려놓기 우리는 두 개의 삶을 산다 사람은 두 개의 삶을 삽니다.  하나는 실제로 내가 살아가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머릿속에 비친 나의 삶 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두 번째 삶에 매달린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나의 건강이나 마음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더 걱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근심과 불안의 상당 부분이 바로 이 '남의 생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 평판은 내 손에 있지 않다. #01편에서 소개한 쇼펜하우어의 세 가지 구분을 다시 떠올려 보겠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가 그 사람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평판은 세 번째에 해당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이 행복에 가장 영향이 적은 것인데도 사람들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평판이 내 손에 있지 않다 는 점입니다. 남의 생각은 그 사람의 기분, 경험, 편견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집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마음을 맡기면, 내 행복도 남의 손에 넘어가 버립니다. 평가의 숫자와 현장의 진짜 가치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평판과 평가는 늘 따라다닙니다. 기관 평가 점수, 실적 보고, 외부의 시선, 후원자와 지역사회의 인식. 물론 이런 평가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잘 보이는 일'이 ’잘하는 일'보다 앞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3년마다 실시되는 시설평가 준비에서 동료가 하지 못한 업무를 보충해 주느라, 주말을 반납하며 일을 했지만 정작 평가 점수 앞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순간, 차라리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수치로 나타나는 평가보다는 심적 만족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25년 가까이 현장에 있으면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일들은 대부분 서류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한 아이가 처음 마음을 열었던 날, 퇴소한 아이가 안부 전화를 걸어 왔던 날. 그 순간들은 어떤 평가표에도 점수로 남...

고슴도치의 거리 — 쇼펜하우어에게 배우는 관계의 기술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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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거리  추운 겨울밤, 고슴도치들의 고민 쇼펜하우어는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들이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몸을 붙였습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자 서로의 가시에 찔려 아팠습니다. 아파서 떨어지면 다시 추워졌고, 추워서 다가가면 또 찔렸습니다. 그렇게 다가섰다 물러서기를 반복하던 고슴도치들은 마침내 서로 찔리지 않으면서도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거리 를 찾아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보았습니다. 사람은 외로움 때문에 서로에게 끌리지만, 각자가 지닌 성격과 단점 때문에 가까워질수록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오래 함께하는 관계일수록 예의와 절제라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만난 고슴도치의 딜레마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이 우화가 남의 이야기 같지 않습니다. 아이들 곁에 있는 일은 마음을 다해 다가가야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면 아이의 상처가 내 상처가 되고, 퇴근 후에도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상처받지 않으려고 한 발 물러서면, 아이는 금세 그 거리를 알아챕니다. 처음에는 아이 돌봄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 업무적으로 도와 주었지만, 이해충돌 앞에서는 거리를 두는 일이 종종 발생합니다.  25년 가까이 현장에 있으면서 깨달은 것은, 좋은 돌봄은 '얼마나 가까이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곁에 있을 수 있느냐'라는 점입니다. 내가 먼저 무너지면, 결국 아이 곁을 지킬 수 없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찾는 세 가지 질문 쇼펜하우어의 고슴도치들처럼, 우리도 관계 속에서 거리를 조절해야 합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봅니다. 1. 이 관심은 상대를 위한 것인가, 내 불안을 달래기 위한 것인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함일 때가 있습니다. 상대가 스스로 설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도 돌봄입니다. 2. 나는 지금 온기를 나누고 있는가, ...

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지킨다 —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독의 힘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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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이 나를 지킨다  혼자 있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하루 종일 사람들 속에서 지내다 집에 돌아오면, 이상하게도 조용한 시간을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런 모습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모임과 어울림을 찾는 이유가 꼭 서로를 좋아해서만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혼자 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내면의 공허함과 지루함을 피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외로움과 고독은 다르다.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외로움 과 고독 입니다. 외로움 은 누군가가 곁에 없어서 느끼는 결핍과 아픔입니다. 고독 은 스스로 선택한 혼자만의 시간,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입니다. 쇼펜하우어가 소중히 여긴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혼자 있을 때에만 남의 눈치나 기대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고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내면이 풍요로운 사람 #01에서 쇼펜하우어가 행복의 가장 큰 몫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두었다고 소개했습니다. 고독은 바로 이 부분과 연결됩니다. 내면이 풍요로운 사람은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고, 산책하며 하루를 돌아봅니다. 반면 내면이 비어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바깥의 자극을 찾아야 하고, 그만큼 타인과 환경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쇼펜하우어 자신도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산책하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만의 리듬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돌봄 현장에서 고독이 필요한 이유 사회복지 현장은 늘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아이들의 목소리, 보호자와의 상담, 동료와의 회의, 끝없는 기록과 행정. 하루 동안 내 마음을 오롯이 내 것으로 쓰는 시간은 거의 없습니다. 매일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서, 학원에서 아무 문제없는 하...

행복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 쇼펜하우어의 행복론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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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것  행복을 쫓을수록 멀어지는 이유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더하려고 합니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인정. 그런데 막상 얻고 나면 기쁨은 잠깐이고, 금세 또 다른 것을 원하게 됩니다.  쇼펜하우어는 이 반복을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무언가를 원하는 동안에는 결핍 때문에 괴롭고, 원하던 것을 얻으면 곧 지루함이 찾아온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행복을 '즐거움을 많이 쌓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줄이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즐겨 인용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쾌락을 쫓지 않고, 고통 없는 상태를 추구한다는 것이지요. 행복을 결정하는 세 가지 쇼펜하우어는 사람의 삶을 이루는 것을 세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 건강, 성품, 마음의 힘 그 사람이 무엇을 가졌는가 — 재산과 소유 그 사람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 — 평판, 지위, 명예 그리고 행복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단연 첫 번째,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높은 평가를 받아도 마음이 병들어 있으면 행복할 수 없고, 가진 것이 적어도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작은 것에서도 기쁨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돌봄 현장에서 다시 보는 행복 아동양육시설에서 아이들과 지내며 이 말을 자주 떠올립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더 많이' 나누고 싶었습니다. 더 좋은 옷, 더 많은 체험, 더 행복한 생일날.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아이들의 얼굴이 진짜 편안해지는 순간은 무언가를 받았을 때가 아니라 불안이 사라졌을 때 라는 점이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늘 긴장 속에 지내왔던 아이가 새롭게 만나는 나를 지난 날의 삶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으며 도움을 요청하던 모습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밥이 있고, 내 편이 있고,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