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는 바닥짐이 필요하다 —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고통의 의미 #05


배에는 바닥짐이 필요하다. 


삶은 왜 이렇게 아플까

쇼펜하우어는 삶의 본질을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원하고, 원하는 동안에는 결핍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래서 그는 '염세주의 철학자'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조금 더 깊이 읽으면, 고통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이 보입니다. 그는 고통을 그저 피해야 할 것으로만 보지 않았습니다.

바닥짐의 비유

배에는 바닥짐(밸러스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배 밑바닥에 일부러 싣는 무거운 짐입니다. 짐이 무거우니 없는 편이 나을 것 같지만, 바닥짐이 없으면 배는 바람과 파도에 쉽게 기울고 뒤집힙니다.

쇼펜하우어는 사람에게도 이런 바닥짐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걱정과 수고, 어려움이 있어야 사람이 중심을 잡고 똑바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 걱정 없이 모든 것이 채워진 삶은 권태에 빠지거나 쉽게 흔들린다고 보았습니다.

고통을 미화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고통이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말이 모든 고통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아동양육시설의 아이들 중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안고 온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상처를 "다 너를 강하게 만들려고 그런 거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이 겪은 고통은 겪지 않았어야 할 일이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바닥짐은 삶을 무너뜨리는 무게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는 적당한 무게입니다. 그래서 돌봄의 역할은 분명합니다. 아이를 무너뜨릴 만큼의 무게는 함께 덜어 주고, 아이가 스스로 감당하며 자랄 수 있는 무게는 곁에서 지켜봐 주는 것입니다.

상처 위에서 자라는 아이들

어느 날 아이가 자립하면 양자가 되게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학창시절을 무탈하게 넘기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예스가 아닌 서로가 힘든 시간을 뛰어넘자는 의미였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미래를 위해 힘들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대합니다. 스스로를 믿는 아이가 힘든 세상을 이겨낼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될 것이라고.

오랜 시간 아이들 곁에 있으면서 본 것은, 회복은 혼자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상처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상처 곁을 끝까지 지켜 준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통이 만드는 가장 귀한 것, 연민

쇼펜하우어 사상에서 가장 따뜻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모든 생명이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깊이 이해할 때,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연민(공감)이야말로 모든 도덕의 뿌리라고 보았습니다.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 그것은 사회복지가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고통을 아는 사람만이 고통 곁에 머물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시련 앞에서 나를 지키는 세 가지

1. 견딜 수 있는 무게인지 먼저 살피기
모든 시련을 혼자 견딜 필요는 없습니다. 무게가 감당하기 어렵다면 도움을 청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2. 고통에 이름 붙이기
막연한 괴로움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지금 무엇이 나를 아프게 하는지 적어 보는 것만으로도 무게가 조금 가벼워집니다.

3. 내 경험을 누군가의 위로로 바꾸기
내가 지나온 시련은 같은 길을 걷는 누군가에게 등불이 될 수 있습니다.

바닥짐을 함께 지는 사람들

쇼펜하우어는 삶이 고통이라고 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연민을 발견했습니다. 어쩌면 돌봄이란, 서로의 바닥짐을 조금씩 나눠 지며 함께 항해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늘의 질문

지금 내 삶의 바닥짐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무게를 함께 나눠 질 사람은 누구인가요?


참고 도서: 『쇼펜하우어 인생수업』 (바닥짐의 비유는 『소품과 부록(Parerga und Paralipomena)』에, 연민의 윤리는 『도덕의 기초에 관하여』에 나오는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바탕으로 풀어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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