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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확신이 부족한 이유 — 결정을 미루는 습관,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 위버멘쉬 명언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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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결정을 미루는 습관,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다 사회복지 현장의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일합니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만큼 다양한 반응이 돌아옵니다. 칭찬이나 격려보다 시기와 질투가 섞인 반응에 당황했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 반응을 이해시키기 위해 동료를 따로 만나거나, 아예 결정을 미뤄 버리는 일도 생기곤 했습니다. 돌아보니 진짜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타인의 감정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결정을 미루는 습관 그 자체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확신이 생겨야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의 현실은 그 반대였습니다. 동료와 클라이언트를 생각하다 보니 결정을 미뤄 왔는데, 돌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행동을 해 봐야 확신이 생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확신은 생각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행동을 통한 경험에서 만들어집니다. 오늘의 명언 "내 행복의 공식: 하나의 예, 하나의 아니오, 하나의 곧은 선, 하나의 목표." Formel meines Glücks: ein Ja, ein Nein, eine gerade Linie, ein Ziel. —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 「잠언과 화살」 44절 (필자 번역) 니체가 꼽은 행복의 공식은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하고, 한 방향으로 곧게 나아가는 것. 끝없는 고민 대신 결정하고 움직일 때 확신도 함께 자랍니다. 왜 자기 확신이 사라질까 자기 확신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계속 고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택이 맞을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반복되면 결정을 하지 못합니다. 결정을 하지 않으면 행동도 없습니다. 행동이 없으면 경험도 없습니다. 경험이 없으면 자신을 믿을 근거도 사라집니다. 결국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이 구조는 생각보다 위험합니다. 사람은 ...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방법 —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갇혀 있던 시간들 | 위버멘쉬 명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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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에 갇혀 있던 시간들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남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생각에 쓰게 됩니다. 업무를 하면서도 나에게 효율적인 방식보다 동료를 돕는 방법을 먼저 찾다 보니, 어느새 나 자신의 기준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실패하면 창피하지 않을까?" "괜히 나섰다가 욕먹는 거 아닐까?" 이 생각이 반복될수록 삶의 중심은 점점 나에게서 멀어집니다. 결국 나의 기준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대중에 속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안이하기를 그만두기만 하면 된다.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외치는 자신의 양심을 따르라." Der Mensch, der nicht zur Masse gehören will, braucht nur aufhören, gegen sich bequem zu sein; er folge seinem Gewissen, welches ihm zuruft: „sei du selbst!" — 프리드리히 니체, 『반시대적 고찰』 3부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1절 (필자 번역) 니체는 남의 눈을 따라 사는 편안함을 '자기 자신에게 안이한 태도'라고 불렀습니다. 남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길은 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목소리에 조금 더 정직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를 떠올려 봅시다. 처음에는 잠깐 기억에 남지만, 하루만 지나도 대부분 잊어버립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기 삶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말실수, 옷차림, 행동, 선택을 오래 기억할 만큼 여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

흔들리지 않는 멘탈 만드는 법 — 25년 현장에서 배운 것, 감정이 아니라 멘탈 관리였다 | 위버멘쉬 명언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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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25년 현장에서 배운 것 사회복지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멘탈을 붙잡아야 하는 순간을 수없이 마주하게 됩니다. 업무에서, 그리고 인간관계 속에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말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이 시간 또한 지나간다." 그리고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 주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위로받는 방법을 선택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넘기는 것은 감정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멘탈 관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명언 "인간에게 위대한 점은 그가 다리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Was gross ist am Menschen, das ist, dass er eine Brücke und kein Zweck ist.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설 4절 (필자 번역) 니체에게 인간은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건너가는 중인 존재입니다(시리즈 #01 참고). 멘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다 갖춘 상태가 아니라, 경험을 하나씩 건너며 단단해져 가는 과정입니다. 멘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멘탈이 약해서 안 돼." 하지만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멘탈은 약한 것이 아니라 아직 훈련되지 않은 상태일 뿐입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침착하고 누군가는 쉽게 무너집니다. 그 차이는 성격이 아니라 경험과 반복의 차이입니다. 왜 나는 쉽게 흔들릴까 멘탈이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처음 겪는 상황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정상입니다. 처음 하는 발표, 예상치 못한 갈등, 갑작스러운 문제.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위험'으로 받아들입니다. 즉, 멘탈이 흔들리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라 처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시 ...

강한 사람이 되는 5가지 방법 — 강약약강을 보며 다짐한 것 | 위버멘쉬 명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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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 강약약강, 그 모습을 보며 다짐한 것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유독 다른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이른바 '강약약강'의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생각보다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부탁을 들어주고, 문제를 만들지 않으려 맞춰 준 것이 오히려 나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되돌아오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마음을 다시 다짐하게 됩니다. 선한 마음이 함부로 무시당하지 않도록, 날마다 스스로에게 되뇝니다. "똑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진실하고 강한 나로 살아가자." 니체의 철학에서 강한 인간은 자기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시리즈 #02 참고). 그리고 강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능력'입니다.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은 사람을 상대하는 감정노동이 많은 만큼, 이 강함을 스스로 훈련하지 않으면 쉽게 소진되기 마련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강해질 수 있을까요? 오늘의 명언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본다."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146절 (필자 번역) 강약약강의 사람에게 상처받다 보면, 나도 모르게 같은 방식으로 되갚고 싶어집니다. 니체는 바로 그 순간을 경계하라고 말합니다. 강해진다는 것은 상대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다르게 서 있을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1. 바른 선택을 위해 기준을 만든다...

위버멘쉬(ubermensch) | 사회복지사 현장 실무(1) 아동복지법 개정, 아동양육시설에 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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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복지법 개정, 아동양육시설에 달라지는 것들 1. 자립준비청년 지원이 계속 강화되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보호종료 이후 자립준비청년에 대한 지원 확대입니다. 자립수당이 단계적으로 인상되어, 2023년 월 3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2024년에는 다시 4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올랐습니다. 15세 이후 조기에 보호가 종료된 아동도 18세가 된 시점부터 5년간 자립지원을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다만 이는 개정법 시행일인 2024년 2월 9일 이후 18세가 되는 경우부터 적용됩니다. 재보호조치를 받은 아동에 대한 자립지원 근거도 새로 마련되어, 보호가 중간에 끊겼다가 다시 시작된 경우에도 자립지원 체계 안에서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이 넓어졌습니다. 보호기간 연장 요건도 명확해졌습니다. 대학 재학 중이거나 아동양육시설·직업능력개발훈련시설에서 직업 관련 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경우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으며, 본인이 원하면 보호조치 종료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시설 입장에서는 자립지원계획 수립과 종사자 자립지원 교육이 법적 근거를 가진 정규 업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새로운 형태의 아동복지시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2025년 4월 1일 공포되고 같은 해 10월 2일 시행된 개정을 통해, 협동돌봄센터가 아동복지시설의 한 유형으로 새롭게 규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협동돌봄센터의 종사자 기준을 마련하는 시행령 후속 작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아동양육시설, 아동일시보호시설, 아동보호치료시설 중심의 체계에 새로운 시설 유형이 추가되는 흐름은, 지역사회 안에서 아동을 돌보는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습니다. 3. 고난도 학대 사례에 대한 심리지원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직접 지원하기 어려운 고난도 사례를 위한 거점심리지원팀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방향으로 시행령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시·...

인간관계 스트레스의 진짜 원인 — 스트레스는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시작된다 | 위버멘쉬 명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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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오는가 많은 직장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료(상사) 때문에 힘들다", "상황이 나를 지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맞습니다.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상황이 아니라 '생각'에서 커집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반응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가볍게 넘기고,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괴로워합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바로 해석 방식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우리 삶의 시인이 되고자 한다. 그것도 가장 작고 일상적인 일에서부터." Wir aber wollen die Dichter unseres Lebens sein, und im Kleinsten und Alltäglichsten zuerst. — 프리드리히 니체, 『즐거운 학문』 299절 (필자 번역) 니체는 삶의 의미를 남이 써 주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써 나가라고 말합니다. 상사의 짧은 대답 하나, 늦은 답장 하나처럼 가장 사소한 일에 어떤 의미를 붙일지도 결국 내가 쓰는 문장입니다. 스트레스는 사건이 아니라 '해석'에서 시작된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해석이 더 본질적이라고 보았습니다(시리즈 #06 참고). 이 관점은 인간 심리를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항상 '의미'를 붙이고 '판단'을 덧붙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상사가 말을 짧게 했다는 같은 사건도 "나를 무시하는 건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오늘 바쁜가 보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은 같지만 스트레스 수준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시 읽기 이런 구조는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쉽게 확인됩니다. 한 사회복지사가 팀장에게 사례 보고를 했을 때, 팀장이 별다른 코멘트 없이 "네, 알겠습니다"라고만 답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

사람에게 기대하면 안 되는 이유 — 기대가 인간관계를 망치는 가장 빠른 길 | 위버멘쉬 명언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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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가 인간관계를 망치는 가장 빠른 이유 인간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를 받는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기대'가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는 계약을 만듭니다. 이 계약은 말로 표현되지 않지만, 머릿속에서는 이미 당연한 기준으로 자리 잡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상대는 그 계약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명언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하는 것이 친구를 만든다." Mitfreude, nicht Mitleiden, macht den Freund. — 프리드리히 니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 499절 (필자 번역) 니체는 우정을 의무나 보상이 아니라 자발적인 나눔에서 찾았습니다. "힘들 때 챙겨 줘야 한다"는 기대 위에 세운 관계보다, 서로 기꺼이 함께하는 순간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기대는 왜 갈등을 만드는가 기대는 '내 기준'을 상대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각자 다른 경험, 가치관,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연락을 자주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왜 연락을 안 하지?", "왜 나를 배려하지 않지?", "왜 내가 한 만큼 돌려주지 않지?" 이 질문들의 본질은 하나입니다. "내 기준을 왜 지키지 않지?"라는 물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단순합니다. 상대는 애초에 그 기준을 공유한 적이 없습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다시 읽기 이런 상황은 사회복지 현장에서도 쉽게 마주칩니다. 한 사회복지사가 힘든 사례를 처리한 뒤, 동료가 먼저 안부를 물어 주거나 위로해 주기를 은연중에 기대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동료는 별다른 반응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 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