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이유 — 당직표가 보여 준 경계의 힘 | 위버멘쉬 명언 #61
들어가며 —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현장에서
사회복지 현장은 사람을 돕는 일이다 보니, 유독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강합니다. 25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며 확인한 것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 경계를 세우지 못한 종사자일수록 오히려 더 빨리 소진되고, 결과적으로 아이들과 동료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는 것과 기준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오늘의 명언
"자기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독립성의 가장 강력한 시험이다." Man muss wissen, sich zu bewahren: stärkste Probe der Unabhängigkeit. — 프리드리히 니체, 『선악의 저편』 41절 (필자 번역)
니체는 자신을 지킬 줄 아는 것을 독립의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고 말합니다. 남을 돕는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이 시험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를 지키지 못하면 결국 누구도 오래 도울 수 없습니다.
사례 1. 계속 당직을 대신 서 주다 지쳐 버린 동료
한 동료 사회복지사는 다른 직원의 사정으로 당직 교대를 부탁받으면 거의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몇 번은 동료를 돕는 좋은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 동료의 당직 횟수는 다른 직원들보다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번에도 당연히 해 줄 것"이라는 분위기가 생겼고, 정작 그 동료의 개인 일정과 휴식은 계속 뒤로 밀려났습니다.
결국 이 동료는 크게 지쳐 한동안 쉬어야 했습니다. 돌아보면 문제는 동료를 도우려는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도움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어떤 기준도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한 번의 배려는 감사한 일이었지만, 경계 없이 반복된 배려는 결국 당연한 몫이 되어 버렸습니다(시리즈 #17 참고).
왜 경계 없는 배려는 결국 자신을 소진시키는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매번 정당해 보이는 부탁이었고, 매번 거절하기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부탁이 반복되는 동안, 이것이 예외적인 도움인지 당연한 역할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돕는 일을 하다 보니, 동료의 어려움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정서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협력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 사람이 소진되는 순간, 결국 그 부담은 다시 조직 전체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경계는 개인의 몫만이 아닙니다. 당직과 추가 업무가 공정하게 나뉘도록 기준을 세우고,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는지 살피는 것은 조직과 관리자의 몫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경계와 조직의 기준이 함께 있을 때, 착한 사람이 먼저 지치는 일이 줄어듭니다.
사례 2. 업무 경계를 분명히 밝혀 신뢰를 얻은 동료
또 다른 동료는 비슷한 상황에서 다르게 대응했습니다. 추가 업무나 당직 요청이 있을 때, 무조건 수락하거나 거절하는 대신 이유와 대안을 함께 말했습니다.
"이번 주는 이미 일정이 있어 어렵습니다. 다음 주라면 조정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태도가 다소 냉정하게 비칠까 걱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이 동료의 말은 신뢰를 얻었습니다. 수락할 때는 확실히 책임지고, 어려울 때는 분명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태도가 반복되자, 동료들은 이 사람의 "예"와 "아니오"를 훨씬 더 믿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경계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협업에서 더 신뢰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였습니다.
감정이 아니라 원칙으로 판단하는 태도
두 동료의 차이는 부탁을 받았을 때 감정으로 반응했는가, 원칙으로 판단했는가에 있었습니다.
감정으로 판단할 때 | 원칙으로 판단할 때 |
|---|---|
"미안해서" 수락한다 | "이 요청이 반복되고 있는가"를 본다 |
"거절하면 나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수락한다 | "지금 우선순위에 맞는가"를 본다 |
상황마다 감정을 소모한다 | 기준이 있어 일관되게 대응한다 |
기준 있는 태도를 만드는 네 가지 방법
- 업무의 경계를 스스로 분명히 한다. 협력이 필요한 상황과, 반복적으로 책임을 떠안게 되는 상황을 구분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 거절할 때는 이유와 대안을 함께 말한다. 상황을 설명하는 거절은 관계를 해치기보다 오히려 신뢰를 만듭니다.
- 일시적인 협조와 반복되는 희생을 구분한다. 한두 번의 도움은 배려지만, 같은 부탁이 반복될 때는 그 구조 자체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면 관리자와 함께 업무 배분을 다시 논의합니다.
- 나의 시간과 컨디션을 업무의 일부로 여긴다. 휴식과 일정을 계속 양보하면 결국 일 전체에 영향을 미칩니다. 돌보는 사람의 회복도 돌봄의 일부입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
- 지금 내가 '당연한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부탁은 무엇인가?
- 다음에 그 부탁을 받으면, 어떤 이유와 대안을 함께 말할 수 있을까?
마치며
오래 일하며 성장하는 사람은 모든 부탁에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알고, 필요한 순간에는 분명하게 거절하며, 스스로 세운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결국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현장에 남았습니다.
사람을 돕는 일일수록 착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배려하되 끌려가지 않고, 협력하되 모든 책임을 떠안지 않는 태도. 그것이 결국 나도, 함께 일하는 사람도,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지키는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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